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존경하는 인물로 언급한 김장하 선생은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평생을 지역 사회와 교육, 문화 발전에 헌신해 온 진정한 어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김장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조명하며, 그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김장하 선생의 생애와 한약방 운영
1922년 경상남도 진주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김장하 선생은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후, 삼천포의 한 한약방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낮에는 약을 썰고 밤에는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이러한 노력 끝에 1962년 한약업사 자격을 취득하였고, 사천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다가 1973년 진주로 이전하여 남성당한약방을 열었습니다. 이곳은 한때 약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늘어설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교육 분야의 헌신: 명신고등학교 설립과 기부
김장하 선생은 한약방 운영으로 얻은 수익을 지역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1983년 진주에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이후 학교가 안정된 운영을 이루자, 1991년에는 학교를 국가에 기부채납하였습니다. 이는 교육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그의 깊은 신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문화와 환경을 위한 기여
김장하 선생은 교육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와 환경 보호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며 사회적 평등을 위한 활동을 지원하였고, 극단 현장과 같은 지역 예술 단체를 후원하여 문화 예술의 발전에도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환경운동연합의 고문으로서 지리산 살리기, 지리산 댐 반대 등 환경 보호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남성문화재단을 통한 사회 공헌
김장하 선생은 남성문화재단을 설립하여 교육, 문화,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 공헌 활동을 펼쳤습니다. 2021년에는 재단의 기본자산인 현금 6억 5천만 원과 서경방송 주식 2만 주(평가액 약 28억 원)를 경상국립대학교에 기탁하며, 재단 해산 후에도 그의 뜻이 이어지도록 하였습니다.
문형배 재판관과의 인연
김장하 선생의 이러한 나눔과 헌신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으며, 특히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과의 인연이 주목됩니다. 문 재판관은 김장하 선생의 장학금을 받고 학업을 이어갔으며,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감사의 인사를 전하러 갔을 때, 김 선생은 "고마워할 이유가 없다. 자신은 이 사회에 있는 걸 저에게 준 것뿐이니 갚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문 재판관이 사회에 기여하는 법조인이 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김장하 선생의 삶이 주는 교훈
김장하 선생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그는 자신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발전과 약자에 대한 배려를 우선시하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진정한 어른입니다. 그의 이러한 삶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큰 귀감이 되며,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가치입니다.
마무리하며
김장하 선생은 자신의 삶을 통해 나눔과 배려,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몸소 실천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며,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그의 뜻을 이어받아, 서로를 돕고 함께 성장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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