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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진화는 정말 멈췄을까? 『부의 본능』의 주장에 대한 과학적 고찰

hydrolee 2025. 4. 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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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진화는 정말 멈췄을까? 『부의 본능』의 주장에 대한 과학적 고찰

최근 몇 년 사이에 크게 주목받은 경제 교양서 『부의 본능』에서는 인간의 진화가 약 1만 년 전에 멈췄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제시합니다. 이 책에서는 인류가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전환하면서 더 이상 생물학적으로 진화할 필요가 없어졌고, 그 이후에는 오로지 문화와 제도, 사고방식의 발전만이 인류의 운명을 좌우해 왔다고 말합니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이 주장은 과연 과학적으로 타당할까요?

 

오늘은 이 주장에 대해 현대 진화생물학과 유전학의 관점에서 깊이 있게 탐구해 보겠습니다.


🧬 진화는 정지하지 않는다: 생물학적 관점에서의 반론

우선, 진화란 무엇일까요? 진화는 단순히 ‘원숭이가 사람으로 변했다’는 식의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세대를 거치며 유전적 특성이 자연선택이나 돌연변이 등을 통해 변화해 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지난 1만 년간 유전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었을까요?

부의 본능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2007년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PNAS)』에 발표된 논문에서는, 인류의 진화 속도가 지난 1만 년 동안 오히려 이전보다 약 100배 빨라졌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농업의 도입, 도시화, 인구 밀집, 새로운 질병의 출현 등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존 압력(선택압)을 제공함으로써 진화를 촉진시켰다는 것이죠.

대표적인 예로는 다음과 같은 유전적 변화가 있습니다:

  • 젖당 분해 유전자(Lactase persistence): 원래 대부분의 성인은 우유에 포함된 젖당을 소화하지 못했지만, 약 7,000~8,000년 전부터 일부 지역에서는 우유를 성인이 되어도 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유전자가 선택되어 퍼졌습니다. 오늘날 유럽인들의 상당수는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 고산 적응 유전자: 티베트 고원, 안데스 산맥, 에티오피아 고지대의 주민들은 산소가 희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적응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 면역 관련 유전자: 전염병은 인간 역사에서 중요한 선택압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흑사병 이후 생존자들의 후손은 특정한 면역 유전자를 더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진화가 결코 멈추지 않았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 『10,000년 폭발(The 10,000 Year Explosion)』: 진화는 오히려 가속되었다

『부의 본능』과는 반대되는 관점을 제시하는 책도 있습니다. 바로 『10,000년 폭발: 문명이 인간 진화를 가속시킨 방식(The 10,000 Year Explosion: How Civilization Accelerated Human Evolution)』이라는 저서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농업 혁명 이후 인간이 더 이상 진화하지 않았다는 통념이 잘못되었으며, 오히려 농업, 사회 조직, 식습관의 변화 등이 새로운 유전자 조합을 선택하는 환경을 만들어 냈다고 주장합니다.

 

즉, 문명이 진화를 멈추게 한 것이 아니라, 문명이 새로운 진화의 무대를 마련해 준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인간은 환경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유전자도 그에 맞춰 조정되어 온 것입니다.


🧠 진화는 생물학뿐 아니라 '문화'에서도 일어난다

한편, 진화는 생물학적인 것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맥락에서도 일어납니다. 언어의 진화, 기술의 발전, 사회 구조의 변화는 모두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처럼 인간은 유전자와 문화가 상호작용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부의 본능』의 주장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생물학적 진화와는 별개로, 인류는 지난 1만 년 동안 문화적 진화를 거듭하며, 삶의 방식과 사고 체계를 빠르게 바꾸어 왔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것이 생물학적 진화가 멈췄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 결론: 인간의 진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결론적으로, 『부의 본능』에서 제시된 "인간의 진화는 1만 년 전에 멈췄다"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뒷받침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유전학과 진화생물학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지난 수천 년 동안도 끊임없이 환경에 적응해 왔으며, 오늘날에도 진화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은 인간이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환경과 문화의 변화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앞으로 인공지능, 기후 변화, 유전자 편집 기술 등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 진화의 방향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은 '변화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입니다.


📌 마무리하며

『부의 본능』은 인간 본성에 대해 통찰력 있는 분석을 제공하는 흥미로운 책이지만, 진화 생물학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런 내용을 접할 때는 "과학적 근거가 무엇인가?"를 따져 보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진화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주인공은 우리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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